필리핀 역사 연표
~ 1571년 |
부족국가 시대 |
1571년 ~ 1898년 |
스페인 식민지 시대 |
1898년 6월 12일 |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선언 |
1898년 ~ 1946년 |
미국 식민지 시기 |
1901년 ~ 1935년 |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Insular Government) |
1935년 ~ 1946년 |
미국 자치령 - 필리핀 커먼웰스(Commonwealth) |
1942년 ~ 1945년 |
일본 점령기 |
1946년 7월 4일 |
미국으로부터 독립 |
1946년 ~ 현재 |
필리핀공화국 |
※ 필리핀은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6월 12일을 독립기념일로 삼고 있습니다.
스페인 정복 이전 부족국가 시대
매우 아쉬운 일이지만, 필리핀 역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을 만한 역사적 기록이 담긴 문헌은 없습니다. 더운 날씨와 지진 등의 자연재해, 거기에 전쟁까지 겹쳐 유물이 남아 있지 않은 탓인데요, 그래도 2007년 루손섬 북쪽에 있는 칼라오 동굴(Callao Cave)에서 6만 7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칼라오 원인(Homo luzonensis)의 뼈가 발견되면서 필리핀에 상당히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아왔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약 3만 년 전 보르네오와 수마트라 등지에서 원주민인 네그리토(Negrito)가 이주하여 정착하였으며, 기원 전·후 말레이 계통 원주민이 유입되어 생활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6세기경 중국과 교역했다는 문헌이 발견되면서, 부족국가 시대부터 주변과 교역했음을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약 10세기부터는 이슬람과도 교역을 시작했으며, 무역을 통해 이슬람이 전파되면서 14세기에 남부 민다나오(Mindanao) 지역에 이슬람 왕국이 건설되기도 했습니다.
조용한 섬나라였던 필리핀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은 16세기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등장한 이후였습니다. 그래서 필리핀의 역사를 스페인 지배 이전 부족국가 시대와 스페인 정복 이후로 크게 나누기도 합니다. 마젤란이 등장하기 전, 말레이 계통의 원주민들이 섬 곳곳에 유입되어 정착했다고 전해지는데요. 통일된 국가는 형성되어 있지 않았고, 족장 지배 체제의 부족국가 형태로 생활했다고 합니다. 필리핀은 지형이 산악과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정착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바랑가이(Barangay)라는 족장 지배 체제 아래 생활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인구는 지금의 0.5%도 되지 않는 약 5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바랑가이는 다투(datu)라는 지배자를 중심으로 대개 30~100가구 정도로 구성되어 있지만, 마닐라나 세부 등과 같은 지역에서는 수백 가구가 넘는 대규모의 바랑가이도 존재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때의 영향으로 요즘도 필리핀의 행정단위 중 가장 작은 단위를 바랑가이라고 부른답니다. 2021년 3월 기준으로 필리핀에는 42,046개나 되는 바랑가이가 있다니 정말 많죠?
스페인의 식민통치(1571년 ~ 1898년)
조선 중종 16년, 그러니까 1521년의 일입니다. 포르투갈의 항해가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이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아 세계 일주를 하던 도중 필리핀에 상륙하는 일이 벌어졌죠. 이 일을 계기로 필리핀의 존재가 국제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고,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했는데요. 당시 스페인에서는 3G, 즉 왕의 영광(Glory), 신의 복음(Gospel), 경제적 이득(Gold)을 위해 세계 일주에 나섰고, 스페인의 눈으로 봤을 때 필리핀은 무역기지로 이용하기 참 좋은 장소였다고 해요. 비록 마젤란은 세부 막탄(Mactan)에서 라푸라푸(Lapu-Lapu)와 벌인 전투에서 사망했지만, 이후에도 스페인은 여러 차례 원정대를 보내 필리핀 제도를 조사했고, 루손섬에 있던 톤도 왕국까지 정복하여 필리핀 지배를 시작하게 됩니다.
스페인은 1821년까지 멕시코 총독을 통해 필리핀을 간접 통치했지만, 이후 직접 통치하기에 나섭니다. 그리고 스페인 식민지 시절 필리핀은 상당히 많은 여러 가지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필리핀이란 나라 이름이었습니다. 당시 스페인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에스파냐의 황금시대를 보내고 있었다고 하죠. 1543년, 에스파냐의 탐사대가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 사마르와 레이테 섬을 놓고 스페인 국왕 필립 2세(펠리페 2세/Felipe Ⅱ)의 이름을 따서 라스 이슬라스 필리피나스(Las Islas Filipinas)라고 지었고, 그 후 스페인 점령기에 전 섬을 필리핀이라 부르게 됩니다. 인구의 절대다수가 가톨릭교도가 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습니다.
이제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서 1860년으로 가보죠.
당시 스페인에서 내란이 발생했는데, 필리핀에서도 스페인을 향한 저항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19세기 후반 필리핀 내 민족주의가 성장하면서 필리핀의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나갔고, 이 시기 등장하는 영웅이 바로 호세 리살(Jose Rizal)입니다. 호세 리잘은 필리핀의 대표적 민족주의자로 필리핀 민족동맹(La Liga Filipina)을 결성하여 저항운동을 벌였지만, 1892년 체포되어 처형되면서 마닐라 루레타 파크를 리잘파크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합니다. 이후 필리핀 독립 영웅 안드레스 보니파시오(Bonifacio)가 비밀결사 카티푸난(Katipunan)을 결성하여 무장봉기했지만 스페인군에게 패하고, 1897년 반대파에 의해 처형되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보니파시오란 이름 혹 어딘가 친숙하지 않으신가요? 마닐라의 청담동이라는 보니파시오 지역의 이름이 바로 이 보니파시오에서 비롯된 것이랍니다.
일본 점령기(1942-1945)와 필리핀의 독립(1946.7.4)
1941년 12월 8일, 일본은 필리핀 클락의 미군 기지를 공습했고, 1942년 1월에 일본군이 마닐라를 완전히 점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1942년 3월 맥아더(Douglas MacArther) 사령관 휘하의 필리핀 주둔 미군이 일본에 밀려 호주로 철수하면서 일본군의 일시적 지배가 시작되었는데요, 당시 일본은 필리핀에서도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워 필리핀 통치를 정당화했고, 이후 1945년까지 필리핀은 일본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1943년 10월 14일 일본에 의한 라우렐(Jose P. Laurel) 괴뢰정부가 수립되었지만, 1944년 10월 맥아더 장군의 레이떼(Leyte) 섬 상륙으로 미국-일본 간 전면전이 다시 시작되게 되고, 1945년 2월 3일 맥아더 장군이 오스메냐(Sergio S. Osmeña) 대통령에게 자치정부 이양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두 아시는 대로,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하게 되죠. 일본 패망으로 인해 미국은 일본에게서 다시 지배권을 받았고, 미국의 지배 아래 커먼웰스 정부는 다시 복구됩니다. 그리고 1946년 7월 4일, 드디어 필리핀은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됩니다. 1571년부터 시작된 외세의 시달림에서 드디어 해방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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